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폴리 전투 (문단 편집) === 오스만 제국의 중립포기 === 앞서 말했듯이, [[다르다넬스 해협]]은 [[독일 제국군#독일 제국 육군|독일 제국 육군]]의 것이나 다름없던 상황이라, 오스만이 중립을 표방하던 말던 간에 흑해항로는 사실상 폐쇄되고 말았다. 그리고 [[독일 제국 해군]]은 1914년 10월 29일, '''오스만의 함선들을 이끌고''' 흑해의 러시아 항구를 포격한다. 오스만 제국은 결국 독일의 편에 서게 되었고, 흑해는 완전히 봉쇄된다. 그 짧은 기간 동안에도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는 물류량이 [[수에즈 운하]]를 능가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급증한 상태였는데, 이 길이 끊기면서 러시아는 외부에서 물자를 들여올 수 없어 순수 자력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. 이 당시 러시아는 공업력이 상당히 낮아 19세기 후반부터 도입을 시작한 [[모신나강]]조차도 자국 생산물량이 부족해 외주를 맡기던 실정이였는데, 이러고도 제1차 세계 대전 때까지 소총이 부족하여 외국에서 무기원조를 많이 받았다.[* 다만, 일본령 조선과는 완전히 육로로 연결돼 그쪽으로 물자가 내입해왔으니 100% 자력으로 전쟁을 치룬 건 아니었다. 대표적으로 당대 [[표도로프 자동소총]]은 일본에서 들여온 [[6.5 mm#s-3.1|6.5x50mmSR 아리사카]] 탄을 이용한 물건이며 이외에도 많은 종류의 물자지원을 받았다. 물론 [[일본 제국]]이 다른 열강보단 경제력은 약했으나 적어도 일본령 내에는 총탄 한발도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 보급 기지로썬 그럭저럭 쓸만했다. 문제는 당시엔 [[시베리아 횡단철도]]도 완전 개통되기 전이라 [[블라디보스토크]]에서 동부전역까지 운송이 굉장히 어려웠단 점이과 불과 9년전 일어난 [[러일전쟁]]으로 두 국가 전부다 상당히 분위기가 좋이 않았기에 뒷이야기가 많았다고 한다.], 당연하지만 그 결과 졸전에 졸전을 거듭해 전선이 계속 밀리게 되었고, 영국과 프랑스도 러시아에서 식량을 들여올 수 없게 되어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전까진 허리를 조르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